당신이 늘 피곤한 이유

 

그거 다 간이 안 좋아서 그래!

 

이상하다. 몸이 좋지 않다. 많이 잤는데도 피곤하고, 눕기라도 할라치면 등짝이 바닥에 붙어 녹아내리는 것 같다. 얼굴은 누렇게 떠서 툭하면 어디 아프냐는 소릴 듣는다. 입맛도 없고 소화도 시원찮고 마냥 힘들다. 슬며시 걱정이 되어, 건강진단 대신 피검사 한번 해본다. 뭐 별 이상 없단다. 내친김에 내시경도 찍어본다. 위와 장 모두 멀쩡하다. 신경성인가? 긍정의 힘을 마구 뿜어내본다. 그래도 눕고 싶은 마음은 사라지지 않는다. 에라 모르겠다 싶어 주말 내내 잠만 자본다. 친구도 술도 그녀도 마다하고 마냥 잠만 자다보니 좀 가뿐해진 것 같기도 하다. 역시 그냥 만성피로야, 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 이번에도 역시 정기검진과 이렇다 할 건강관리 계획 없이 넘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잠깐. 혹시 ‘간’이라는 존재를 잊고 있지는 않은지. 한창 몸만들기에 여념이 없고 나름대로 ‘웰빙’하며 지내는 이삼십대 남자들에게 간질환은 관심 밖이기 쉽다. 폭탄주 따위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담배 또한 폐활량을 줄인단 소리에 거의 끊었는데 무슨 간질환? 하기사 주변에도 꼭 집어 “간이 나쁜가?” 하는 소리를 해주는 친구는 없기 마련. “신경성 아냐?” “요즘 밥은 잘 먹어?” “운동 좀 꾸준히 해” 정도 소리는 들어도 말이다. 그런데 사실, “무리하지 마”라든지 “푹 쉬어” 등은 모두 간과 직결된, 간을 걱정하는 말이다. 간은 몸 외부, 내부에서 주입되는 온갖 독성물질을 해독하는 몸 안의 정화기 같은 장기다. 일본영화 <간장선생肝臟先生>의 주인공인 의사 아카기는 환자들이 무슨 말만 하면 한 마디로 잘라내 돌팔이 소리를 듣는다. “그거 다 간이 안 좋아서 그래!” 피곤해도 간 탓, 소화가 안되어도 간 탓, 살이 빠져도 간 탓….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렇다. 간장선생은 돌팔이가 아니었다. 그리고 젊고 술 절제 잘한다고 해서 간이 늘 안전지대에 있는 것도 아니다.




당신의 간은 안녕한가?

 

그렇게 살다간 당신 간도 감당 못해!

 

간은 내장 기관 중 가장 크다. 게다가 처리하는 물질 수도 어마어마하다. 일단 자체적으로 지닌 효소만도 2천여 종류. 섭취한 음식물 등 영양분 대사는 물론 혈액 합성, 소화를 위한 담즙 만들기, 노폐물 해독, 면역력을 담당하는 면역체 형성 등 오지랖도 넓다. 말이 간단해서 ‘영양분 대사’ ‘노폐물 해독’이지, 필수 영양소부터 환경 호르몬까지 간이 맡아야 할 일은 산처럼 쌓였다. 기능만 놓고 보면 크기가 세 배는 더 되더라도 뭐라고 못할 지경이다.

물론 위장, 소장, 대장 등 다른 내장들을 얕보는 건 아니지만 이들은 그래도 본격적으로 활동하는 시간과 쉬엄쉬엄 움직이는 시간이 따로 있다. 그러나 간은 그런 여유를 부릴 시간이 없다. 밥을 먹으면 영양소 대사를, 술이 들어오면 알코올 분해 대사를, 평소에는 피도 만들어두어야 한다.

 

그래서 늘 많은 부담을 안고 움직이고, 더 세심한 배려를 필요로 한다. 그런데 현실은? “마실 수 있을 때 마셔둬! 서른만 넘어도 예전 같지 않아!” “젊은 사람이 야근하지 누가 하나? 자네가 남게.” 바로 이거다. 그리고 그 스트레스를 또 몸에 해로운 방식으로 푼다. 결과는 숫자가 말해준다. OECD 가입국 중 간암 환자 수 제1위. 40대 남성 사망자 비율 1위. 이미 20~30대 무렵부터 당신의 간은 죽음을 향해 말달리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게다가 최근의 라이프스타일은 간을 나쁘게 할 수밖에 없는 요소들이 너무나 많다. 패스트푸드점이 많이 줄었다고는 하지만, 패밀리레스토랑의 메뉴들도 거의 반제품 요리들을 기름에 다시 한 번 데워내는 시스템. 기름을 사용한 요리는 산화 속도도 빠르고, 이렇게 산화된 음식은 간에 알코올 이상의 악영향을 준다. 와인도 마찬가지다. 질 좋은 와인을 이따금 즐기는 것은 문제가 없지만, 알코올 도수 14도 내외의 와인(맥주의 3배에 가깝다!)을 음식에 곁들이는 음료수 정도로 생각하는 근래의 와인 붐도 간에는 피곤한 일이다.


물론 적당한 와인은 문제 없다. 또 몸과 건강에 대한 지나친 관심은 어떤가? 검증되지 않은 단백질제제나 지방흡수억제제 등의 의약품을 양껏 섭취하고, 웬만한 이상 증상은 혼자 웹 검색을 통해 약국에서 약을 사서 해결하는 풍조 등이 오히려 젊은 층에는 만연하다. 그러니 ‘간도 좀 관리하셔야지요’라는 소리 들을 나이는 아니라고 짜증내지 말자. 극단적으로 말해볼까? 방치하다간, 저런 말을 들어도 마땅할 나이까지 당신은 살아 있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제 간질환에 아주 가깝게 있는 이들의 증언을 들어보자. 그리고 해결책도 고민해보자.




1 간에 나쁜 일은 하나도 안하는데…
벤처기업으로 시작해서 제법 번듯한 기업으로 자란 우리 회사. 모두 젊고 자유로운 분위기라 그런지 어이없는 일이 벌어지는 딱딱한 기업들처럼 인간관계 스트레스는 많지 않은 편이야. ‘헤쳐 모여’ 같은, 술 못 마시면 내시 취급받는 눈치도 없는 편이고. 그러나 힘든 면도 많지. 일단 밤 근무가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는 IT계열 독특의 업무 패턴이야. 나야 일찍 퇴근하고 싶고 그래도 되는 날이 많지만, 서버 관리자와 엔지니어들은 모두 올빼미 체질들인걸? 야근을 함께 하다보면 빌딩 관리 느슨한 틈을 타 사무실에 담배 연기도 떠돌고, 야식도 늘 먹게 돼. 편의점 상품 구색을 우리처럼 잘 아는 사람들도 드물걸. 모든 인스턴트 음식들을 먹어봤지. 요즘은 종류도 다양해서 질리지도 않는다니까. 그리고는 꼭두새벽에 집으로 돌아가는 거지. 혼자 사는 오피스텔 안에 들어서면 그래도 몸 축날까 걱정하면서 종합 비타민과 각종 영양보조제를 한 움큼 삼키고 잠이 들어. 낮과 밤이 좀 바뀌긴 했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건실한 삶이지! (김성길, 28세, 모 포털사이트 콘텐츠기획업무)

그러면 안 된다 간이 해독해야 하는 것 중에는 외부 환경에서 들어오는 노폐물이나 독성물질도 해당된다. 보약이나 건강보조식품, 기호품들도 간에는 일거리다. 도심 한복판의 오피스텔(대부분 창을 활짝 열 수 없는 구조로 되어 있다)에서 살면서 인스턴트 식품으로 끼니를 때우는 것은 간에 과도한 부담을 주게 되어, 적절한 해독을 해주지 않을 경우 만성 간염, 간경변증으로 이어질 수 있다. 특히 인스턴트 식품 안에 든 수십 종의 화학 식품첨가물들은 간에 과도한 부담을 준다. 굳이 인스턴트를 먹지 않더라도 농약을 뿌린 농산물, 화학성분의 공기청정제, 플라스틱 용기에서 배어나오는 환경호르몬 등으로 간은 충분히 피곤하다는 사실을 유념할 것.

2 인생 뭐 있어? 술이면 다 잊지
솔직히 내놓고 떠들진 않지만 은밀한 자랑거리가 하나 있어. 친구들을 만나 술자리를 가지면 다들 예전 같지 않거든. 개중에는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허세를 부리는 놈들도 있긴 하지만 대부분 서른 넘으면서 주량이 확 떨어진 거야. 그러니 술자리도 김이 빠질 수밖에. 예전엔 초저녁부터 이른 아침까지 마시며 우정을 쌓았는데 이젠 열한시만 되어도 다들 아우성이야. 그러나 나는 멀쩡하다는 거지. 소주 두 병을 연이어 들이켜도 쌩쌩하거든. 물론 네댓 병에도 거뜬하지. 회식 자리에서도 신입들이 “차장님 대단하시네요”라고 말하면 조금 으쓱하지. 웰빙시대에 주량 자랑이 웬 말이냐고? 그래도 남자들 사이에서 아직은 이게 먹히는걸. 때로는 거래처와의 업무 진행에 플러스가 되기도 한다구. 물론 다음날이면 숙취가 없진 않아. 그래서 종일 속이 미식대기도 하지. 그러나 안주도 듬뿍 먹고 있고, 마신 다음날 딱 하루만 몸 사리면 돼. 회복 능력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거든. 그렇게 나의 즐거운 주당 생활은 이틀에 한번 꼴로 이어진단 말씀. (양은기, 33세, 전자메이커 마케팅팀 차장)


 

 



그러면 안 된다 두말할 것도 없이 알코올성 간염과 지방간으로 달려가는 상황이다. 그리고 직접적인 원인이 될 뿐 아니라 모든 간질환 보유자의 증상을 심화시키기도 한다. 게다가 음주 정도가 심한 경우 반드시 정신병적 증상을 동반하기 때문에 치료가 점점 어려워지는 질환이다. 특히 개인차는 있지만 간이 알코올을 완전히 해독하려면 48~72시간이 걸리므로, 아무리 술을 좋아하더라도 일주일에 두 번 이상 마시는 것은 간을 제물로 바치는 것과 똑같다.

Self Test


당신도 간질환 예비군인가?


간은 모 아니면 도다. ‘간이 정말 나쁜 것 같아서’ 병원에 가면 이미 손을 쓸 수 없는 상태인 경우가 대부분. 간질환 초?중기 증상을 섞어놓은 이 테스트 문항에 답해보고, 3개 이상 해당한다면 괜한 걱정한다 생각 말고 병원으로 달려가 간 기능 검사를 받으라.


1 눈동자의 흰자위와 얼굴이 자주 노랗게 된다.
2
원인을 가늠할 수 없는 입 냄새가 난다.
3 오후만 되면 열이 마구 오르며 밤에 잘 때 땀으로 흠뻑 젖는다.
4 만성피로, 어깨 결림, 뻣뻣한 뒷목은 늘 따라다니는 증상이다.
5 갈비뼈 밑이 뻐근하고 단단한 게 만져진다.DANGER
6 체중이 3~5kg 갑자기 늘거나 줄었다.
7 구역질을 동반한 소화불량 증상이 이어진다.
8 소변에 거품이 보이며, 갈색에 가까울 정도로 짙다.
9 몸과 손바닥에 붉은 반점이 보일 때가 있다.
10 두드러기나 가려움증이 갑자기 생겼다.



 

간 건강을 위한 +5 vs. -5



당신의 간 건강을 위해 덧셈 뺄셈을 잘해야 한다. 다섯 가지는 더해야 할 것이며, 다섯 가지는 당신 생활에서 빼야 한다.


+5 좋은 것들
1 간을 위한 정기검진을 당장 연간 스케줄에 끼워넣어라.
2 개인용 그루밍 도구(특히 손톱깎이)를 따로 마련하라.
3 음식은 무조건 골고루 섭취한다. 단, 산화된 음식만은 예외다. 저지방 고단백만 고집하면 오히려 영양 편중을 초래할 수 있다.
4 휴식, 휴식, 휴식!
5 가능하다면 물과 공기가 좋은 환경으로 옮기라.

-5 나쁜 것들
1 술을 끊어라. 못 끊겠다면, 술을 마실 때는 맥주 1,500cc, 소주 6잔, 위스키 4잔을 넘지 않는 것이 좋다.
그리고 최소한 사흘의 간격을 두라.
2 의사와 상의하지 않고 섭취중인 모든 약물을 중지하라.
3 스트레스를 줄이라. 최근 스트레스와 과로에 의한 간질환 악화를 인정하는 대법원 판결도 나왔다.
4 수입농산물은 꼼꼼히 살펴보자. 중국 일부 지역에서는 간에 치명적인 독성물질을 함유한 땅콩 등이 재배되어 논란이 된 바 있다. 안전한 것만 수입되었으리라고 누가 보장하는가?
5 담배를 끊어라. 폐만 괴롭히는 게 아니라, 간에도 엄청난 부담이다.



3 히피의 정신을 이어받은, 나는야 자유인
완벽주의나 지나치게 깔끔한 환경은 예술혼을 해친다고 생각해. 여자 친구는 내 지론이 핑계라고 방방 뛰며 내 방을 돼지우리라고 거품을 물지만, 정말 그렇다니까. 내가 슈트 입고 안경 쓴, 셔츠의 ‘각’에 신경 쓰는 쫀쫀한 마마보이들처럼 살아야겠어? 그리고 정떨어지게 찌개를 각자 덜어먹자는 둥 술잔 돌리지 말자는 둥 하는 것도 싫어. 홍대앞 놀이터에 털썩 앉아서 술잔 돌리면서 오징어다리 서로 물려주고, 그런 거 얼마나 좋아. 피어싱도 서로 해주고. 개인주의라지만 그렇게 살지 말자고들. (박찬진, 24세, 그래픽디자이너)

그러면 안 된다 당신의 라이프스타일과 가치관을 재단하려고 할 시간 없다. 지금은 간 생각만 하기도 바쁘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이런 생활 방식은 바이러스성 간염을 일으키기 아주 쉽다. 바이러스성 간염은 오염된 식수나 음식, 키스나 섹스 등 여러 경로를 통해 몸 안에 잠입한다. 최근에는 피어싱과 문신이 흔해지면서 시술시 사용하는 바늘에서 감염되는 사례도 많다. 바이러스성 간염은 급성이 많지만, C형 간염은 80% 정도가 만성으로 넘어가므로 주의해야 한다. 특히 B형 간염은 ‘국민병’이라고 할 정도로 숫자가 많으므로 웬만하면 다른 사람 입에 댄 음식을 먹는 건 삼갈 것. 최근 5년간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유행성 A형 간염도 요주의. 너무 깨끗하게 자라 항체가 없는 젊은 층이 단체 생활이나 조금만 손 씻기를 게을리 해도 덜컥 걸려 2주간은 입원해야 하는 만만찮은 병이다.

4 다이어트 따위 관심 없어요
직업이 직업이다 보니 새로운 음식을 먼저 맛보는 일에 사명감까지 느끼고 있다. 조리를 하다보면 맛도 보아야 하고, 일이다 보니 다이어트 운운하면서 뺄 수 없는 상황도 이어진다. 그리고 조리사라는 직업이 원체 체력이 필요한 일 아닌가. 섣부른 다이어트 때문에 건강을 잃을까봐 다소 두툼한 체형을 자의반타의반으로 유지하고 있다. 삼십대가 되면서 나잇살까지 겹치면 남들이 봐도 명백한 비만 체형이 될까 싶어 전전긍긍하긴 하지만, 딱히 건강에 문제는 느끼지 못하고 있다. 술도 마시지 않고, 몸에 좋지 않은 음식도 먹지 않으며 스스로 조리한 음식 위주로 먹다보니 오히려 건강식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간질환? 그런 건 생각도 해보지 않았다. 비만 때문에 오는 질병은 당뇨 정도 아닌가? (김진운, 30세, 조리사)

그러면 안 된다 최근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는 간질환이 바로 비알코올성 지방간이다. 지방간은 말 그대로 간에 허옇게 지방이 끼는 간질환. 알코올이 지방간의 가장 큰 원인이긴 하지만 서구화된 식단 때문에 비만으로 인한 지방간을 호소하는 사람들도 많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육식 위주 식사를 하는 사람의 간질환 비율과 비만 비율은 채식 위주의 사람들보다 각 2.5배, 1.5배로 높았다. 다행인 건, 지방간은 원인만 없애면 치료할 수 있는 병이라는 것. 비알코올성 지방간은 체중조절과 적절한 운동만 하면 6개월 정도에 완치된다.

Posted by 성희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