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겁고 매운 열(熱)바람



글_이규섭 / 칼럼니스트, 전 국민일보 논설위원


한국인들의 성격은 일본사람들에 비해 비교적 솔직하고 감정을 쉽게 드러내는 편이다. 친하다싶으면 허물없이 대한다. 일본인들은 신중한 편인데다 감정을 쉽게 드러내지 않고 친한 친구라도 예의를 갖추는 것이 다르다. 금세 뜨거워지는 온돌문화와 은근하고 오래가는 ‘코다쓰 문화’의 영향일 수도 있다.
우리나라 국민의 원형질은 열정과 단결이다. 한국인의 교육열은 뜨겁다 못해 극성스러울 정도다. 냄비처럼 뜨겁게 달아오르다가 쉽게 식어버리는 단점도 있다. 열정 못지않게 단결심도 강하다.

IMF 이후 금 모으기 운동의 동참이라던가, 월드컵 때 전국을 뜨겁게 달구었던 붉은 악마의 응원, 미군장갑차에 숨진 여중생추모 촛불시위 등에서 보여준 단결력은 외국인들도 깜짝 놀랐다. ‘한 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이라는 구호처럼 동류의식이 끈끈하다보니 혈연, 지연, 학연을 따지는 것도 유별나다.
화끈하고 열정적인 불같은 성격이 많아 뭐든지 빨리빨리 하지 않으면 직성이 풀리지 않는다. 시중에 떠도는 우스개 말에 ‘자판기의 커피를 뽑을 때도 외국인들은 커피가 다 나온 뒤 불이 꺼지면 컵을 꺼내지만, 한국인들은 자판기버튼을 눌러놓고 손을 집어넣어 컵을 잡고 기다릴 정도로 급하다’고 폄하하지만 우유부단한 성격보다는 급한 사람이 진취적이다.
한국에 부는 열 바람은 찜질방에서도 찾을 수 있다. 비지땀을 흘리며 피로를 풀고, 젊은이들의 데이트 장소로도 인기다. 웰빙과 주5일 근무제 영향으로 스포츠 열풍에 빠져드는 사람들도 부쩍 늘었다. 최근엔 자폐증을 이기고 마라톤을 완주하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영화의 인기와 함께 달리기 열풍도 일고 있다.
음식문화도 우리는 열로써 열을 다스리는 이열치열(以熱治熱)을 즐긴다. 한여름 땀을 뻘뻘 흘리며 삼계탕이나 매운탕을 먹으면서도 ‘시원하다’고 한다. 여름에 뜨거운 음식을 먹으면 땀을 흘려 몸을 식혀 바깥 온도와 균형을 맞추게 된다는 한의학적 근거도 있다.
한국음식의 특징은 맵고 짜고 입안이 얼얼하도록 화끈하다. 매운탕에 고춧가루와 마늘을 넣고 고추장까지 푼다. 생선회를 먹을 때도 간장에 고추냉이(와사비)를 듬뿍 풀어 코 속이 찡하고 눈물이 핑 돌 정도로 찍어 먹는 게 한국인의 식문화다.
화끈한 한국인들의 성격을 반영이라도 하듯 지난해부터 매운 맛을 내는 신(辛)바람이 불고 있다. 불황일수록 자극적인 음식을 찾는다는 트렌드를 반영한 결과다. 매운 맛은 한국인에게 친숙하고 중독성이 강한 편이어서 단골고객 확보가 쉽기 때문이다.
붉은 고추를 상징하는 붉을 ‘홍(紅)’과 매운맛을 뜻하는 ‘신(辛)’이나, 뜨거움의 뉘앙스가 강한 ‘불’이나 ‘화로’같은 글자를 넣은 음식점 간판이 즐비하다. 불닭, 불삼겹, 불오징어, 불오뎅, 불쭈꾸미 등 맛만큼이나 자극적인 메뉴가 많아졌다. 매운 갈비찜, 매운 꽃게, 매운 족발까지 생겼는가하면 노점상에서도 ‘매운 떡볶이’가 등장했다. 일부 젊은 층에서는 매운 맛 마니아까지 생겨나는 추세라 하니 열풍의 위력은 대단하다.
불황 속에서 자극적인 음식을 찾게 된다는 사회현상이 가장 큰 요인으로 보여진다. 주머니가 가벼운 서민들이나 샐러리맨들이 매운 안주에 톡 쏘는 소주로 위안을 삼는 일들이 늘어나기 때문일 터.
그러나 불황 탓에 늘어난 실직자들과 부업여성들이 자영업에 뛰어들면서 공급과잉이 빚어져 자영업자들의 실질소득이 4년 사이에 18% 이상 줄어들었다는 통계는 매운맛 음식의 역풍이 우려되는 대목이다.
경기장기침체로 어깨가 쳐질수록 열성을 다해 땀흘리는 열풍이 불어야 살맛이 나고, 삶의 무게가 가벼워진다. 열 바람 같은 열정 없이는 아무것도 이루어 낼 수 없다. 그것이 세상사는 평범한 이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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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성희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