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8. 3. 20:13
소금에 대한 견해(천일염 생산자가 전하는 소금이야기)
천일염에 대하여
천일염전을 50년동안 운영하며 80여만 가마의 소금을 생산한 저로서
소금에 대한 문의를 받을 경우에 말해주는 답변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소금은 지금으로부터 20여년 이전의 소금이 가장 좋은 100% 청정 소금이 아니겠는가 생각해봅니다.
그때는 바다에서 물을 퍼올 릴 때부터 풍차처럼 생긴 나무로 된 수차를 이용해서 소금광부가 수차위로 올라가 수차의 날을 한 칸씩 밟으면 수차가 돌아서 바닷물을 염전위로 퍼 올렸지요 수차의 물소리가 철썩 철썩하고 발을 밟을 때 마다 나곤했지요
그렇게 두어 시간 수차를 밟아야 오전이 갔습니다. 이렇게 퍼 올려진 바닷물은 모양이 지금과 같은 ‘누테’라고 불리는 증발지를 하루에 한 칸씩 일기가 좋지 못한 때에는 이틀에 한 칸씩 예닐곱 개를 거처 짜디짠 함수가 되어 해주(함수창고)에 모이게 됩니다. 지금은 고무 장판이나 타일 등으로 깔려있는 결정지는 예전에는 모두 롤러로 하루에도 수차례 물을 실기 전에 다지고 다진 갯벌 상태였는데요 이 결정지(소금을 만들어내는 증발지)에 이 짜디짠 함수를 보메도(프랑스 화학자 보메가 만든 비중계)로 염도25를 확인하고 소금물을 결정지에 실습니다. 이때에도 수차가 이용되지요
그러니까 해주로 올 때까지는 바닷물이고 소금을 만들기 위해 소금판(결정지) 위에 물을 넣을 때가 되어야 드디어 소금물이라는 칭호를 얻게 되는 것이지요.
이렇게 결정지에서 반나절이 지나면 소금이 보이게 되고 하루나 이틀이 지나면 소금을 내게 되지요 소금을 낸다는 말은 결정지위에 소금 결정들을 대파(고무래)를 이용해서 한곳으로 모아 운반도구에 실어서 소금창고로 운반하는 것을 말하지요
이때에 소금광부는 고무가 달린 대파를 이용해서 소금판 한곳으로 소금을 모우고 나무주걱(지금은 없어짐)으로 대나무로 만든 소쿠리에 조심스럽게 소금을 담아 소금창고로 운반하기위해서 강고(양쪽에 소쿠리가 매달린 한쪽 어깨로 소금을 나르는 지게)의 소쿠리에 담고 그 다음에서야 물이 줄줄 흐르는 소금을 소금창고에 운반하게 되지요
이처럼 어느 하나 인공적인 현대화도니 물건이 접근하지 않았던 시기가 20여 년 전의 염전의 모습이고 그때의 소금이 최고의 소금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그때의 소금을 다른 말로는 토(土)판 소금 즉 흙판에서 생산되는 소금이라는 뜻이지요. 소금의 색깔은 검고 검은 뻘들이 소량 포함되게 되어 있습니다. 생산과정에서 포함될 수 밖에 없는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그리고 소금의 소출로 따지면 지금 5000가마를 생산하는 염전이라면 3~3500여가마 정도만이 생산할 수 있었습니다.
그때는 그렇게 적은 양의 소금을 얻더라도 소금 한가마(50kg)의 시세가 어떨 때는 벼 한 가마와 같은 시세로 팔려 나갔으니 열심히만 하면 넉넉하지는 않더라도 부족하지 않는 생활은 할 수 있었지 않았나하고 생각 됩니다.
아무튼 제가 보는 소금은 토판소금이 최고지만 지금 사람들은 아마도 더럽다고 먹을 생각도 안할 겁니다. 소금을 물을 녹이면 소금이 녹아 뿌연데다가 뻘까지 있으니 얼마나 보기에 좋지 않겠습니까? 그래도 거기에 몸에 좋은 미네랄과 영양성분들이 많이 들어있다고 생각되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럼 그 시절에 소금을 어떻게 사용하였느냐하면 젓갈을 담을 때를 빼고는 소금을 녹여 2~3시간 기다려 부유물과 침전물을 제거한 깨끗한 소금물로 장을 담그고 김장을 하곤 했느니 지금 소금을 바로 음식에 넣는 급한 시대가 아니었지요. 어쩌면 그때가 더 건강하고 깨끗한 먹거리를 만들어 보려는 어머니들의 마음을 느낄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었나하고 생각해 봅니다. 우둔한 글이지만 끝까지 읽어주셔서 고맙겠습니다.
금소금 금옥염전 http://www.goldsal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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